멸망을 피할 방법
2024-02-05 06:58:20

 "이거, 이 '1'이라 된 건 뭡니까?"

 "우리 우주의 부피입니다."

 "부피? 그럼 그 옆에 있는 건..."

 "시뮬레이션 우주의 부피입니다. 지금은 대략 0.8이군요."

대통령은 이해를 못 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어. 하지만 망신당하기 싫어하는 속물답게 더 이상 캐묻지 않았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연구소장은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어.

 "제가 부피라고 말씀드렸지만, 정말로 우리 우주의 부피가 1이라는 건 아닙니다. 그저 상대적인 척도를 나타낸 것이지요. 우리 우주가 1이라고 가정했을 때 시뮬레이션 된 세계는 얼마나 큰지 알아보기 위해 있는 값입니다. 이제... 시뮬레이션의 부피가 0.9를 달성했으니, 우리 우주보다 대략 10퍼센트 작다고 할 수 있겠군요. 둘 다 1이 되면 시나리오를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이 완성되는 겁니다."

대통령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다물었어. 난 박사님의 인내력에 깜짝 놀랐어. 멍청이들을 절대 참아내지 못하는 인간인데 그래도 대통령에게는 예의를 지킬 건가봐.

 "각하, 이제 시작됩니다. 여기 이 작은 점이 시뮬레이션 된 우리 은하입니다. 이 안에 지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구는... 아직 중생대가 끝난 지 얼마 안됐군요. 조금 연산 속도를 높이면... 마이오세를 지나서, 이제 플라이스토세에 진입합니다. 원시 인류가 등장했을 겁니다. 아, 이제 됐습니다."

연구소장은 감속 버튼을 여러 번 눌렀어. 초당 수백만년씩 흘러가던 시뮬레이션 속 시간이 점점 느려졌어.

 "방금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이제 곧 인류가 20세기에 접어듭니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이 끝났습니다. 이제부터 보실 게 중요한 부분입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별들로 가득 찬 우주를 보여주던 홀로그램은 꺼졌어. 조금 전까지 넓은 방을 메우고 있던 디스크 돌아가는 소리도 일시에 멈췄어.

 "뭡니까?"

 "종말입니다."

대통령의 얼굴이 일그러졌어.

 "아니,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 해놓고는, 대뜸 종말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주가 소멸한 겁니다. 보십시오."

연구소장이 가리키는 건 시뮬레이션 우주의 부피를 뜻하는 디지털 숫자였어. 조금 전까지 '1'이었던 것이 어느새 '0.000...1'로 곤두박질 쳐있었어. 그리고 잠시 뒤 긴 소수점 자리가 모두 사라지고 숫자는 깔끔한 0이 되었어.

 "허, 나 원, 이해를 못하겠군."

멍청한 대통령은 경악하는 대신 짜증을 냈어.

 "그 전에 이게 대체 다 뭡니까? 뭔, 무슨... 시뮤, 시뮬레이션이라고 했습니까?"

 "'예측 엔진'입니다."

대통령은 옆에 있던 과학기술부장관에게 시선을 돌렸어. 장관은 넉살 좋게 웃으며 연구소장이 설명할 것이라고 공을 넘겼어. 연구소장은 불안한 와중에도 웃으며 과학에 문외한인 일반인도 알아들을 수 있는 설명을 시작했어.

 "말 그대로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만들어진 컴퓨터입니다."

 "미래를 예측한단 말입니까?"

 "예, 지난 2022년에 시작된 국가기간프로그램입니다. 우주의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정확히 재현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잠재적인 미래까지도 예측해낼 수 있는 일종의 시뮬레이션 기기..."

 "잠깐만요. 말하는 중에 미안한데, 2022년이면... 벌써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당선인 시절에도, 당장 어제도, 이런 게 있다는 걸 한 번도 보고받은 적이 없습니다."

 "나중에 전부 설명드리겠습니다. 일단은 급히 아셔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대통령은 다시 이맛살을 한껏 찌푸리고는 선심쓰듯이 말했어.

 "말해보세요."

연구소장은 땀을 닦으며 내게 손짓했어. 난 재빨리 들고 있던 파일을 넘겼어.

 "사실, 예측 엔진은 완성된지 얼마 안됐, 아니, 사실 그 전부터 있긴 했지만, 지금의 가장 완벽한 형태인 '카산드라-피티아' 버전을 완성한지는 얼마 안됐습니다. 완벽한 예측이 가능하도록 여러 모델을 갈고닦는데 수십년이 걸렸죠."

 "그래서 하고자하는 말이 뭡니까?"

 "8년 전에 처음 가동을 시작한 뒤로 저희 연구팀이 약 이백삼십만회 미래를 시뮬레이션했는데 말입니다..."

연구소장이 말을 멈췄어.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고, 손끝이 덜덜 떨리고 있었어.

 "가동했는데?"

대통령이 채근하고서야 연구소장은 말을 이었어.

 "그 중 16회를 제외한 모든 시뮬레이션에서 우주가 곧 멸망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우주가 멸망해요? 언제?"

 "언제라도 멸망할 수 있습니다. 올해 12월 9일과 내후년 5월 16일 사이의 어느 시점에서 우주는 반드시 멸망합니다."

대통령이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어.

 "허, 내가 진짜 살다살다 별... 이거 제대로 작동하긴 하는 겁니까?"

옆에 있던 과학기술부장관이 대통령의 귓가에 속삭였어.

 "국방부에서 사용하는 전략전술지휘통제 프로그램이 저 예측 엔진의 베타 버전입니다. 지금 저 물건은 국방부 것보다 최소 15만배 더 뛰어난 연산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15만배?"

대통령과 과학기술부장관은 국방부에 예측 엔진의 열화판을 제공한 것을 두고 한바탕 설전을 벌였어. 한시가 급하다는 연구소장의 만류에 둘은 겨우 진정했지.

 "각하, 어떤 고등문명도 해결하지 못한 종말의 위기가 지금 우리 세계를 향해 닥쳐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종말이 대체 뭐 때문이라는 겁니까? 원인을 찾아서 조치를 취하세요."

 "저희도 모릅니다."

 "모른다니. 저, 예측... 기계가 알려줄 것 아닙니까?"

 "예측 엔진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인 상황입니다."

 "지금 본인이 하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들리는 지는 압니까? 대체 무슨 한계가 있다는 겁니까? 아니, 멸망한다면서요? 그럼 뭐 때문에 멸망하는지 정도는 당연히 알 것 아닙니까?"

 "그게 핵심입니다. 이 멸망은 형태가 없습니다. 전조도 없습니다. 그저 갑자기 찾아와 우주를 한 순간에 끝장냅니다."

 "그러니까 그 멸망이 뭐냐는 말입니다!"

 "뭔지 모른다고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주먹다짐을 할 뻔한 두 사람을 옆에 있던 장관과 경호원들이 말려서 겨우 떼어놓았어. 과열된 분위기가 가라앉고 나서야 연구소장은 다시 대통령에게 설명을 시작할 수 있었어.

 "예측 엔진은 우주 그 자체를 재연합니다. 수경수조 개의 세계를 만들어낸 다음, 우주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철저하게 우리 세계와 동일하게 흘러간 모델을 하나 골라서 미래 또한 시뮬레이션합니다. 이를 통해 향후 시행될 정책의 효과와 부작용 등을 알아내고, 미리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만한 부분을 제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과장이나 거짓말이 아니라, 지금 이걸로 진짜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겁니까?"

 "예, 각하. 바로 그겁니다."

 "그럼... 우리 당 다음 총선 결과도..."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닙니다! 세상이 사라질 판인데 그깟 정치가 대수입니까!"

대통령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어. 하지만 더이상 유치하게 징징거리진 않았어.

 "알았어요, 알았어. 내가 지금까지 들은 걸 정리해보건데, 일단 이건 미래를 보는 기구에요. 그렇지요?"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걸로 당신네들이 우주가 멸망한다는 걸 알아냈어. 그런데 그 멸망이 뭔지는 아직 모른다 이거지?"

 "예, 그렇습니다."

 "멸망하는 것 자체는 틀림없고?"

 "틀림없습니다."

 "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단정하지?"

 "조금 전에 보셨잖습니까."

연구소장이 다시 한 번 시뮬레이션 우주의 크기가 적힌 디지털 스크린을 가리켰어. 여전히 '0'이란 숫자는 변하지 않은 채였어.

 "한 번 봤으니까, 다시 보죠. 다시 가동시켜보세요."

 "가동 중입니다, 각하."

 "뭐라고요?"

 "각하, 아까부터 예측 엔진은 계속 가동 중이었습니다. 저희가 인위적으로 멈춘 게 아닙니다."

 "지금 이 홀로그램 꺼진 거 아니에요? 빛이 없는데."

 "우주가 소멸하고 난 뒤의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를 보여주는 겁니다."

대통령의 얼굴이 화난 열대문어처럼 알록달록 해지기 전에 연구소장이 재빨리 덧붙였어.

 "말씀드렸다시피, 이미 이 프로그램을 이백삼십만번 이상 가동했습니다. 문제는 서기 2100년대의 미래를 보려고 해도, 항상 우주가 21세기 후반에 종말을 맞이하기 때문에 절대 볼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럼 기계에 뭔가 이상이..."

 "'우리 우주'만 멸망합니다, 각하. 시뮬레이션에 일부러 변수를 부여해서 우리 우주와 다른 역사로 흘러가도록 하면 서기 1만년대, 2만년대는 물론 10억년 후까지도 계속 이어집니다. 예측 엔진에는 전혀 이상이 없습니다."

대통령은 생각이 많아졌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어.

 "지금 무슨 상황인지 대충 알겠으니까, 이제 내가 좀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예, 각하."

 "이 종말에 형태가 없다고 했는데, 그럼 우리가 갑자기 전부 사라지기라도 합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주가 한 순간에 극히 일부만 남기고 소멸한 다음, 남아있던 부분도 곧 사라집니다."

 "이 예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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