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배운 기독교의 정수는 정말 '회개하면 다 된다'가 맞다.
하지만 한국의 기독교는 '다 되는 수준'의 회개가 어느정도인지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
현대 대형교단들과 한국의 대부분 교회들이 예수의 삶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회개는 세속적 미련을 다 버리고 가족을 향한 기쁨이나 미련조차 한톨 남기지 않는 온전한 자아의 포기와 함께 이뤄진다.
더 큰 집을 얻어야 하고 내 자식이 더 좋은 직장에 다녀야하는 일말의 기대조차 남지 않는 인격의 변화가 기독교 회개의 본질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라는 마태복음의 구절을 설명해주는 교회는 거의 없다.
빌고 복종하면 복을 받아 현실의 재화와 명예를 얻는다는 설교만이 끝없이 이어진다.
왜냐하면 그래야 헌금이 나오니까.
신도 입장에서는 헌금을 해야 그게 이자가 붙어 하나님에게 돌려받을 수 있다 여긴다.
철저한 기업 논리와 자본주의 구조다.
이 시스템을 공고히 하는 것은 기여자를 향한 세심한 관리와 만족감 서비스인데
그 대표적인 것이 '교회를 다니는 것으로 당신은 이미 구원받았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다.
구원될 자는 정해져있고 그 행위가 열매로 나타난다 주장했던 칼빈의 구원론에서 달콤한 부분만 골라먹는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사고방식은
손쉬운 개신교 포교를 위한 도구로 이용되어 유독 한국 교계에 뿌리깊게 박혀있다.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는다는 이 무식한 교리는 무지한 자들의 죄의식을 없애주고,
죄의식이 없으니 자신을 크리스천이라 부르면서 성경을 읽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으며 타인을 정죄하는 것에 차별감을 느끼게 되는 문화로까지 번진다.
유독 한국 기독교계에 만연한 동성애자 혐오와 유별난 차별 역시 '나는 죄가 없기 때문에 정죄할 자격이 있다'는 의식을 대변한다.
아버지 안씨가 기도할때마다 지져스! 라고 외치면(유학을 다녀온 후 부터 주님, 하나님대신 지저스라고 외침) 정인이가 눈치를 보며 아맨을 따라해야 밥을 줬다는 식의 혹독한 가정교육은 철저하게 본인이 죄과에서 벗어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가능한 행위의 예다.
정의가 악보다 더 잔인할 수 있는 것은 죄의식의 결여에서 시작된다.
나는 이게 단순히 그들의 타고난 악한 본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식 기독교 교육을 받은 전형적 인간의 필연적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교육되어왔기에 벌어진 사고다.
동작대교에 자식을 빠뜨려 죽여놓고 나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죄를 씻을 수 있다고 했던 아버지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예수가 말하는 죄성의 본질, 마음과 생각의 부정함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성경을 자기 편한 대로 편집해서 받아들인다.
내가 지키기 어려운 율법은 예수가 죄를 대속해줌으로 해결했으니 문제가 없고 남이 지키지 못한 율법은 마귀, 사탄, 귀신의 유혹에 빠져 지옥행 티켓을 끊어놨다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율법 잘 지키며 사는 너나 무식한 쟤나 똑같은 죄인이라고.
행위로써 구원받는다 믿고 못난 놈 괴롭히며 차별감을 느끼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예수는 재수 없는 선지자였다.
그래서 고발당해 못 박혀 죽었다.
바리세파가 행위로써 스스로 구원을 얻었다고 믿었기에 사마리아 사람을 천대하고 안식일에도 일해야만 하는 사람을 모욕했듯이,
현대 대부분 기독교인들은 대외적으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적으로는 교회에 바친 물질로써 구원을 얻고 믿음을 증명했다고 믿는다.
왜?
헌금을 많이 걷기 위해 교회와 교단에서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신도는 직접 예수의 삶을 사는 것보다 쉬운 차별감을 얻길 원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짜 죄'는 인간의 룰을 초월한다.
그렇기에 어떠한 죄를 지었더라도 신 앞에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이 맞다.
다만 진짜 기독교인이라면 이런 짓을 저지른 양부모가 본인이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살아가는 것과 사회적 룰에 따라 벌을 달게 받는 것을 분별할 줄 알것이다.
사형을 당하더라도, 평생 감옥에서 나오지 못해도, 혹여나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구원을 위한 진정한 반성은 육체의 구속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예수의 삶을 닮으려는 인간은 아버지 목사가 시킨다고, 같은 기독교인이니까, 인간이 인간의 죄를 심판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공동체의 룰을 무시하지 않는다.
예수는 카이사르의 것을, 세속의 규칙을 존중했다.
이를 애써 무시하는 기독교인은 결과적으로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지 않는다.
예수를 믿지 않는 인간이기에 태연하게 내 죄는 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고, 내 죄를 인간이 심판할 수 없으니 구속은 면해달라 당당히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