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의 낙하산은 어느 속도였을까?
2020-09-28 12:31:27
 

 
충무공은 늘그막에 무과에 급제한뒤에도 특유의 꼬장꼬장성격으로 상관한테 쿠사리먹고 강등먹는게 일상이였는데
 
이순신의 그러한 일화중 하나로 1580년 선조의 1차 낙하산을 타고 36살에 종9품 훈련원봉사에서 종4품 수군 만호직에 임명되는데 
 
 
 

 
이 부대에 개쩌는 오동나무가 있었다
 
 

 
그런데 직속상관 전라좌수사인 성박이 "야 니네부대 나무 쩐다며? 나무 좀 베어와라" 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이순신이 "그것은 나라소유의 물건입니다"라며 거부를 한거임
 
현대로 치면 사단장이 "야 니네부대 나무 하나 베어와라" 라고 시켰는데 대대장이 "부대 영내 나무도 국가 소유이니 할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한 셈
 
이런 성격으로 상급자들에게 좋게 보일리가 없었고 평가에서 나락을 찍은 뒤 낙하산으로 오기 전이였던 종9품 훈련원 봉사로 강등당함
이후 다시 10여년간 천천히 계급을 올려가며 1589년 종6품 정읍현감이 됨
 
그러던중 다시금 유성룡의 추천과 선조의 낙하산프로젝트가 시작되는데...
 

 
- 1590년(46세)
7월 : 류성룡이 고사리진 병마첨절제사(종3품)로 천거했으나 "변방 수령은 만 1년이 되지 않으면 자리를 바꿀수 없다."는 사관원의 반대로 개정되었다.
8월 : 평안도 만포진 수군첨절제사로 천거되었으나 역시 사관원에서 지나치게 진급이 빠르다는 이유로 개정되었다.
 
- 1591년(47세)
2월 13일 : 이억기, 이천, 양응지와 함께 남해 요해지로 임명하여 공을 세우게 하라는 선조의 전교가 내려왔다. 그리고 이전 처럼 진급이 빠르다는 이유로 거절 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정읍현감에서 진도군수(珍島郡守)로 승진시킨후 부임하기도 전에 가리포첨절제사(加里浦僉節制使)로 전임 시켰으며 이 또한 부임하기 전에 전라좌수사(종3품)로 초수했다.
 
 
요약하면 종6품 정읍현감에서 보직장소 도착하기도 전에 승진시켜가면서 2년만에 정3품 전라좌수사까지 올라감
 
현대로 치면 VIP가 40대에 매일 강등먹던 대위를 청문회에서 진급속도 너무 빠른거 아님? 이라고 공격당하는거 다 무시하고 2년만에 사단장 시켜준셈